"11월 겨울을 맞은 나무의 무수한 잔가지가 차가운 공간을 향해 정련한 자세로 뻗쳐있다. 가지와 가지가 교차하면서 둥근 윤곽선을 만들어 나무의 존재를 드러내고 가지 사이사이 틈새로는 옅은 하늘빛이 들어와 있다.
사물이 공간에 접하면서 실루엣을 만들고, 실체와 비실체가 공존하며 서로의 존재를 나타내는 듯.
여기 가느다란 선들이 만들어 내는 형상은 안과 밖을 함께 보여주고, 내부와 외부를 하나의 경계로 구분하여 그 형체를 이루고 있다. 선은 그림과 작업의 기본 단위로서 매우 단순 간결하고, 여러 선들로부터 점점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결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입체형태가 만들어지고, 표면의 자유로운 드로잉은 운동의 궤적(軌跡)을 찾고 있다.
깨끗하고 반짝이는 새것에서 점점 부식되고 탁해져가는 누적된 시간의 흔적들이 사물의 본질에는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우주적 관점에서 삶의 공간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고착(固着)된 삶의 흔적은 어떻게 남아있게 되는 것인가"
